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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연구소/서양 미술

화가이야기 - 20세기 현대 미술의 표현 주의자 '카임 수틴'

by 지식 연구원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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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는 평생을 불행과 가난 속에서 살다가 죽어서야 인정받았습니다. 만약 고흐가 생전에 그림이 비싼 값에 팔렸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화가가 있습니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표현주의자로 불리는 <카임 수틴>입니다.

 

 

카임 수틴 자화상
카임 수틴 자화상 출처 : 위키백과

 

'카임 수틴'의 생애

  수틴은 1893년 리투아니아의 민스크에 가까운 스미로비치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가난한 재봉사였고 11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수틴은 그 중에 10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가난한 유대인 구두장이인 수틴의 아버지는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혼이 있는 생물을 그리면 안 된다'는 유대교의 엄격한 규칙을 이유 삼아 "유대인은 그림 따위를 그려서는 안 된다"고 화를 내며 매질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몰래 식기를 팔아 미술 재료를 구입해 어두운 광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마을의 장로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가 장로의 자녀들에게 심하게 맞고, 보상금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미술 학교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상 이상의 극도의 가난과 추위 속에서 수틴은 몽파르나스의 집단 아틀리에인 '라 뤼세'로 거처를 잡았습니다. 라 뤼세는 140개의 작은 방으로 쪼개어져 식사 두 끼 정도의 비용의 저렴한 월세로 가난한 화가들이 지내는 곳입니다. 마르크 샤갈, 아메데오 모딜리아나, 피카소 등 지금은 유명하지만 그들이 무명인 시절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수틴은 그림이 판매되지 않아 항상 굶주리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몸까지 약해 주변 화가들이 나눠 주는 음식들을 얻어먹고 지냈습니다. 

하루는 그가 옷을 벗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 친구가 기겁한 적이 있었는데, 새 옷을 구할 돈이 없어 그나마 입고 있던 옷이 닳지 않도록 옷을 벗고 그림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소의 몸통을 구해와 매달아 놓고 썩어서 벌레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이웃 화가들은 악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평론가들은 수틴이 더럽고 지저분해서 인종 차별성 발언으로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공격했습니다. 그가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그림을 왜 그릴까요. 그는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자신의 내적 심리, 정서를 전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도살된 소>를 10개의 연작으로 남겼습니다. 수틴은 혐오스러움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며 <매달린 칠면조>,<껍질이 벗겨진 토끼>를 그렸습니다.

 

 

부와 가난의 굴레

  수틴은 고흐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랐습니다.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가서도 힘든 삶은 계속되었습니다. 다행히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이웃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의 능력과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인정해주고,  친구가 되고, 지원군이 되어줬습니다. 적지만 매일 1프랑씩 지원을 하고, 미술수집가인 '앨러트 번즈'를 소개해 줬습니다. 수탄이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고가에 판매되었고, 그는 드디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난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수틴은 저택을 구입했지만, 월세를 내지 못해 옮겨 다니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옮겨 다녔습니다. 5개나 되는 방이 있었지만, 그는 한 칸만 사용했고 그의 방에는 언제라도 옮길 수 있도록 바닥에 트렁크가 열린 채로 지냈습니다. 그가 더욱 부자가 될수록 그는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고, 극복 수단으로 술을 마시며 지냅니다.

자기 재산이 줄어들까 두려워서 지나치게 탐욕스러웠으며, 작품에 대한 집착도 병적으로 심해져 팔았던 자기 작품을 다시 구입해서 파손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랜 굶주림으로 위궤양이 심해졌으며 결국 50세에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게 되었지만, 마음은 가난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1921년에 수틴의 <청어가 있는 정물화>는 며칠을 굶은 그가 청어를 테이블에 놓고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침을 질질 흘리며 배고픔을 참고 작업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배고픔이라는 고통과의 싸움을 이겨내면서까지 작업에 열중한 것입니다. 

청어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며칠을 굶어가며 작업하는 것은 배고픔의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 아티스트 인사이트 <차이를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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