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언가 카산드라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는 아리스베라는 여인과 결혼했으나, 새로운 여인 헤카베와 사랑에 빠져 아리스베를 페르코테의 왕 히르타코스에게 넘겨주고는 자신은 새로운 연인과 재혼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가정을 이룬 헤카베와 프리아모스는 무척이나 금슬이 좋았습니다. 그 결과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카산드라라는 딸이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카산드라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헬레노스가 그의 쌍둥이 남매입니다. 쌍둥이였던 이 둘은 어떤 형제자매보다도 사이가 돈독해, 어디를 가든 늘 함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쌍둥이 남매는 여전히 둘이서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다가 아폴론 신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잠시 이곳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든 이 아이들을 아폴론의 뱀들이 지켜보았습니다. 너무나 귀엽고 예쁜 이 남매의 모습에 반한 아폴론의 뱀들은 이들의 귀와 입을 햝아주며 귀여워했습니다. 잠이 깬 남매는 자신들에게 신비한 능력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예언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카산드라는 그런 신비한 능력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까지 갖춰 많은 남성이 연정을 품었습니다. 커갈수록 아름다움이 점점 빛을 발하는 카산드라의 곁에는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고백하는 남자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런 주변의 찬사와 사랑 때문인지 카산드라는 점점 도도해졌습니다.
짝사랑이 선물한 죽음보다 더한 아픔
어느 날, 태양을 주관하는 신이자 예언의 신인 아폴론이 카산드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카산드라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에게 흠뻑 빠진 아폴론은 그녀를 품에 안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당시 아폴론은 많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의 사랑을 받아준 여인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에 아폴론은 이번에는 무작정 달려들 게 아니라 선물로 카산드라를 유혹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에게 다가섰습니다.
"카산드라여! 그대에게 예언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그 능력은 별 것 아닐세.
만일 그대가 나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면 강력한 예언 능력을 선물하도록 하지."
아폴론은 많은 인간이 자신을 찾아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언을 부탁한 바 있고, 신의 축복을 받아 그런 예언 능력을 갖춘 자를 인간들이 경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분명 자신의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녀에게 미리 강력한 예언 능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하지만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이런 제안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이런 카산드라를 본 아폴론은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폴론은 그녀가 자신을 뿌리치면 뿌리칠수록 더 열정이 훨훨 타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아폴론은 더욱 그녀에게 치근덕거렸습니다. 그러나 아폴론의 어떤 말로도 카산드라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제게 좋은 선물을 주신다고 해도 마음이 가지 않는 걸 어떡해요.
그리고 전 함부로 몸을 파는 여인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다른 여인을 찾든지 하세요."
아폴론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짓밟는 카산드라를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었습니다. 아폴론은 화를 버럭 내며 그녀를 밀쳐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아폴론의 인내도 한계에 달했습니다. 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너를 어여삐 여겨 예언의 능력을 주었지만 지금 그 능력을 다시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진실한 예언을 해도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게 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을 카산드라는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당시로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한 채 일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카산드라는 갑작스러운 일에 놀랐는지 한동안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런 뒤 반쯤 눈을 감을 채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방안을 빙빙 돌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가족들은 그녀가 미친 것이 틀림없다며 걱정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비극
며칠 후 잠에서 깨어난 카산드라는 그때부터 수시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빨리 보이는 일들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누구 한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카산드라의 저주받은 능력은 그녀가 트로이전쟁을 예언하면서부터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트로이를 함락하러 이곳을 찾은 그리스군을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는 위장 전술을 폈는데, 여기에 속아 넘어간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 목마 안에 그리스 군사들이 숨어 있음을 예언 능력을 통해 알게 된 카산드라는 제발 성안으로 목마를 들여보내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그 누구도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에 왕족 신분에서 일순간에 노예가 된 카산드라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가맴논의 전리품이 되었습니다. 아가멤논은 카산드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집으로 돌아가면 필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며 극구 아가맴논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폴론의 카산드라를 향한 젖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던 아가멤논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와 밀회를 즐기던 정부의 칼에 맞아 카산드라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절대적이고 냉철한 신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폴론 자신의 사랑을 외면당했을 때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기보다는 분노하고, 저주하며 오히려 인간보다 더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카산드라는 어쩌면 이런 아폴론의 진짜 숨겨진 모습을 예언 능력으로 보았기에, 저주받고서라도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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